새 학기 첫 주, 아직 이름도 다 못 외운 반에서 유독 말을 걸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표정이 크게 바뀌지 않고, 단톡방에는 "ㅇㅋ" 정도만 남기고, 쉬는 시간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요. 몇 주 뒤 누군가 "쟤 좀 시크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여요.
시크하다는 말, 원래 뜻과 요즘 쓰는 뜻
시크(chic)는 원래 프랑스어로 멋스럽고 세련됐다는 뜻이에요. 패션 기사에서 "시크한 룩"이라고 할 때는 이 뜻에 가까워요.
그런데 사람에게 "너 시크하다"라고 할 때는 조금 다르게 쓰여요. 무심한 듯 담백하고, 감정을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 않고, 남의 시선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말할 때가 많아요. 멋있다는 칭찬일 때도 있고 살짝 다가가기 어렵다는 뜻이 섞일 때도 있어요.
시크한 사람 특징 세 가지
1. 말과 답장이 짧아요
"오늘 저녁 뭐 먹을래?"라는 물음에 긴 고민 대신 "떡볶이"라고 답해요. 할 말만 하는 편이라 대화가 금방 끝나요. 본인은 그냥 답했을 뿐인데, 받는 쪽은 '혹시 기분 안 좋나?' 하고 메시지를 한 번 더 보게 돼요.
2. 리액션이 크지 않아요
웃긴 영상을 보여 줘도 크게 웃기보다 피식 웃고 넘어가요. 그래서 재미없어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 영상을 다른 친구에게 보내고 있는 걸 발견하기도 해요.
3. 꾸밈은 덜한데 취향이 분명해요
옷이나 말투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유행을 다 따라가지 않아도 좋아하는 게 확실해서 그 분명함이 오히려 멋있어 보여요.
시크한 것과 차분한 것, 세련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친구픽 첫 라운드인 '첫인상' 목록에는 시크한 옆에 차분한과 세련된도 있어요. 셋은 자주 같이 떠오르지만 결이 달라요.
차분한 사람은 반응이 일정하고 서두르지 않아요. 그 안정감이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시크한 사람은 여기에 약간의 거리감이 더해져요. 친구가 실수했을 때 차분한 사람이 "괜찮아, 천천히 다시 하자"라고 말한다면, 시크한 사람은 "응, 다시 하면 돼" 하고 짧게 끝내는 쪽이에요. 둘 다 흔들리지 않지만 온도가 조금 달라요.
세련된 사람은 주로 감각과 겉모습으로 기억돼요. 옷, 물건, 고르는 카페까지 정돈되고 감각 있어 보일 때 이 말을 써요. 시크한 사람이 세련돼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세련된 사람이 꼭 시크한 건 아니에요. 옷은 감각 있게 입는데 리액션은 누구보다 큰 사람도 있으니까요.
시크한 첫인상, 친한 친구 앞에서는 딴사람
시크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의 오래된 친구에게 물어보면 반응이 꽤 달라요. "걔가? 우리끼리 있으면 제일 시끄러운데?"
반에서는 말이 없던 사람이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 둘과 있으면 쉬지 않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생일에는 무심한 척 "지나가다 보여서" 하며 선물을 내밀고, 단톡방에서는 짧게 답하면서 개인 톡으로는 긴 위로를 보내기도 하고요. 이럴 때 시크함은 성격의 전부라기보다 아직 편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짓는 기본 표정에 가까워요.
그래서 처음엔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친해지고 나서 "생각보다 다정하다", "의외로 허당이다"라는 말을 듣기도 해요. 첫인상과 친해진 뒤의 간격이 클수록 그 반전도 크게 느껴져요.
시크하다는 말을 들으면 본인은 왜 의외라고 느낄까
시크하다는 말을 들은 사람 중에는 "나 그냥 낯가린 건데"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어요. 본인에게 그 무표정은 쿨함이 아니라 어색함이나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을 수 있어요. 짧은 답장도 귀찮아서가 아니라 길게 쓰는 게 서툴러서일 수 있고요.
나는 내 의도를 알고, 친구는 내 표정과 말투를 봐요. 그 사이에 생기는 틈이 조하리의 창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창', 그러니까 남들은 보는데 나는 잘 모르는 나예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내 얼굴을 거울이나 사진으로만 봐요. 아무 생각 없이 있을 때의 내 표정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정작 나만 모르는 셈이에요.
이 틈은 오해받기 쉬운 지점이기도 해요. 시크해 보여서 먼저 말을 못 걸었다는 친구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그 분위기를 멋있다고 느끼는 친구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나면 오해를 풀지 그 모습을 즐길지 내가 고를 수 있어요.
나를 처음 본 친구와 오래 본 친구가 각각 어떤 단어를 고를지 궁금하다면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해요. 첫인상에서는 시크하다던 친구가 친해진 뒤의 나를 두고는 전혀 다른 단어를 고를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