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일요일 밤마다 그림을 한 장씩 올리던 친구가 점심을 먹다가 말해요. "그림 계정은 이번 주까지만 하려고. 요즘은 영상 쪽이 더 궁금해서 다음 달부터 그 시간에 영상 편집을 배워 볼까 해." 한 친구가 "1년이나 했는데 아깝다" 하자 다른 친구가 웃으며 받아요. "얘 끈기 하나는 알아주잖아. 손이 안 그려진다고 석 달 동안 손만 그렸던 애야. 영상도 1년은 하겠지."
그림을 그만두는 친구가 끈기 있다는 말을 들어요. 끈기는 하나를 끝까지 붙드는 힘일까요, 무엇을 하든 쉽게 놓지 않는 힘일까요?
끈기 뜻, 쉽게 끊어지지 않는 기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끈기'의 첫 뜻은 "물건의 끈끈한 기운"이에요. 예문은 "멥쌀이 찹쌀보다 끈기가 덜하다"예요. 사람을 두고 쓰는 둘째 뜻은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이고 예문에 "끈기 있는 사람"도 있어요.
풀이에서 눈여겨볼 말은 '쉽게'예요. 끈기는 절대 단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쉽게 단념하지 않는 거예요. 찹쌀 반죽이 잡아당겨도 금방 끊어지지 않듯 힘들거나 지루해도 금방 손을 놓지 않는 쪽이에요.
친구픽에서 '끈기 있는'은 "공부하거나 일할 때 나는?"을 묻는 네 번째 질문 '할 일 앞에서'에 들어 있어요.
끈기 있는 사람 특징, 막히고 지루할 때 보이는 것
끈기는 잘 풀릴 때보다 막히거나 지루해질 때 드러나요.
- 빠진 날이 있어도 다시 돌아와요며칠 운동을 못 가도 '이번엔 망했다'며 접지 않고 다음 날 다시 가요.
- 막힌 문제를 다시 붙잡아요틀린 문제를 해설만 보고 넘기지 않고 다음 날 혼자 다시 풀어 봐요.
- 같은 연습이 되풀이돼도 이어 가요기타 코드 바꾸는 연습만 몇 주째 하고 있어도 그만두지 않아요.
- 그만둘 때도 이유를 따져 봐요힘들다고 바로 놓지 않고 정말 안 되는 일인지 살핀 뒤에 놓을지 정해요.
같은 '할 일 앞에서' 질문에는 '성실한'도 있어요. 첫 장면의 친구로 치면 일요일마다 한 장씩 올린 건 성실함이고, 손이 안 그려지던 석 달을 넘긴 건 끈기예요.
그런데 연구에서는 끈기가 '성실성'이라는 더 넓은 성격 특성과 잘 갈리지 않았어요.
그릿 연구를 모아 다시 보니
끈기를 다룬 연구로 가장 유명한 건 '그릿(grit)'이에요. 미국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와 동료들이 2007년에 "장기 목표를 향한 끈기와 열정"이라고 정의한 개념이에요. 그릿 점수는 두 부분을 합쳐 매겨요. 어려움이 있어도 열심히 하는 '노력의 지속', 그리고 목표와 관심을 자주 바꾸지 않는 '관심의 일관성'이에요.
그릿이 널리 알려진 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마커스 크레데(Marcus Credé) 연구진은 그릿을 다룬 연구들에서 참가자 집단 88개, 6만 6천여 명의 결과를 모아 다시 분석했어요. 여러 연구를 한데 모아 보는 이런 분석을 메타분석이라고 해요. 성과로는 주로 성적을 봤어요. 2017년에 발표한 결과 가운데 세 가지를 보면 이래요.
- 성실성과 크게 겹쳤어요그릿 점수는 성격 5요인 가운데 성실성과 아주 강하게 겹쳐서 따로 떼어 볼 특성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어요.
- 성적과의 관련은 크지 않았어요지능이나 공부 습관처럼 잘 알려진 다른 요인과 견주면 약한 편이었어요.
- 두 부분의 무게가 달랐어요어려워도 계속 노력하는 쪽이 목표와 관심을 자주 바꾸지 않는 쪽보다 성적과 훨씬 더 관련이 있었어요.
성격 5요인은 사람의 성격을 외향성·친화성·성실성·신경증·개방성 다섯 갈래로 나눠 보는 심리학의 대표적인 틀이에요. 이 가운데 성실성은 여러 면을 묶은 넓은 갈래예요. 연구진은 성실성 안의 '자기 절제'(지루하거나 한눈팔 거리가 있어도 일을 시작해 끝까지 해내는 힘)와 '성취 추구'(이루고 싶은 마음과 방향 감각)가 그릿의 정의와 아주 비슷하다고 짚었어요. 끈기가 성실성과 겹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친구픽의 '성실한'은 이 넓은 성실성 가운데 매일 몫을 해 두는 모습에 가까운 단어예요.
연구진은 그릿이 쓸모 있다면 '노력의 지속' 쪽일 거라고 봤어요. 두 부분을 합친 점수는 '노력의 지속'만 볼 때보다 성적을 가늠하는 힘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거든요. 끈기를 한 우물만 파는 것으로만 보면 성적과 더 이어진 '어려워도 계속하는 힘'을 놓치는 셈이에요.
다만 관련을 본 연구라 그릿을 키우면 성적이 오른다는 뜻은 아니에요. 연구진도 그릿과 성적의 관련이 크지 않으니 그릿을 키우는 교육을 해도 성적이나 성과가 나아지는 효과는 약할 수 있다고 썼어요.
그만둘 줄 아는 것도 끈기의 일부일까
목표를 내려놓는 쪽을 들여다본 연구도 있어요. 캐나다 콘코디아대의 카르스텐 브로슈(Carsten Wrosch) 연구진이 2003년에 낸 논문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건 어려운 목표가 아니라 이룰 수 없게 된 목표예요.
논문에 실린 세 연구 가운데 첫 번째에서 미국 카네기멜런대 학생 115명에게 물었어요. 중요한 목표를 더는 이룰 수 없게 되면 노력을 줄이고 마음을 거두기가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다른 목표를 찾아 시작하는지였어요. 내려놓기 쉽다고 답한 학생일수록 스트레스가 적었고 문제가 자꾸 떠오르는 일도 덜했어요. 앞날을 스스로 이끌 수 있다는 느낌은 컸고요.
다른 목표를 찾아 시작하는 힘도 내려놓는 힘과 별개로 이런 마음 상태와 관련이 있었고, 삶의 목적이 뚜렷하다는 느낌과도 이어져 있었어요. 다만 이 힘과 스트레스의 관련은 목표를 잘 놓지 못하는 학생들에게서 뚜렷했고 쉽게 내려놓는 학생들에게서는 뚜렷하지 않았어요. 스트레스가 가장 컸던 건 목표를 놓지도 못하고 다른 목표를 찾아 나서지도 않는 학생들이었어요.
설문으로 본 관련이라 내려놓아서 스트레스가 줄었는지, 스트레스가 적은 사람이 잘 내려놓는지는 알 수 없어요.
두 연구는 잰 것도 달라요. 하나는 성적을, 하나는 마음 상태를 봤어요. 둘을 나란히 놓으면 끈기는 한 가지만 끝까지 붙드는 힘보다, 하던 일은 쉽게 놓지 않되 이룰 수 없게 된 일은 내려놓을 줄 아는 힘에 가까워 보여요. 그만둘지 고민될 때는 '힘든가'보다 '아직 이룰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볼 만해요.
그림을 접는 친구가 끈기 있다는 말을 듣는 이유
첫 장면의 친구는 1년 동안 이어 온 그림을 접고 영상으로 옮겨 가요. 그릿의 두 부분으로 보면 '관심의 일관성'은 낮아도 '노력의 지속'은 높은 쪽이에요. 손이 안 그려지던 석 달을 넘긴 사람이니 쉽게 단념했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이룰 수 없어서 내려놓는 것도 아니에요. 관심이 옮겨 간 거예요. "영상도 1년은 하겠지"라는 말에는 무엇을 하든 쉽게 놓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담겨 있어요.
친구픽의 "공부하거나 일할 때 ○○은?" 질문에는 '끈기 있는' 옆에 '성실한'과 '계획적인'도 있어요. 성격 5요인으로 치면 셋 다 성실성과 가까운 단어지만 친구 눈에 먼저 띄는 모습은 저마다 달라요. 친구들이 그중 무엇을 골랐는지 견줘 보면 내가 매일 몫을 해 두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막혀도 놓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미리 짜 두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어요.
